무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제31대 의자왕(재위 641~660)은 태자 때 부모에게 효성스러웠고, 형제간에는 우애가 돈독했었다고 한다. 의자왕은 신라에 대한 공략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으나, 자만심에 빠져 독재군주로서의 한계성을 드러내었다. 또한 의자왕은 당시 삼국을 둘러싼 국제관계의 변화에도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였다.
신라는 당과 연합하여 백제를 공략하였다. 백제는 계백이 이끄는 5천결사대가 황산벌에서 신라 5만군을 저지하였으나 실패하고, 신라와 당군은 사비도성에 대한 총공격을 감행하였다. 660년 7월 12일 나·당연합군이 사비도성에 이르자 13일에 의자왕은 태자 효와 함께 북방 웅진성으로 피신하고 나당군은 사비성을 포위하여 결국 함락시켰다. 이어 웅진성으로 피신했던 의자왕과 태자도 항복하였으며, 의자왕과 태자, 여러 왕자들, 다수의 고위직 관료, 그리고 수많은 백성들은 당의 수도로 보내졌고, 백제지역에는 당에서 5개의 통치조직을 두었다.